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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고대 로마인들의 뛰어난 건축물 콜로세움

by 윤새싹 2020.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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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던 네로 황제의 동상 이름인 콜로소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당시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이 건축물에만 국한된 이름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로마 뿐만 아니라 다른 시에 지은 경기장들의 이름도 콜로세움이라고 불리웠다고 하는데요.

 

이 로마시에 있는 건축물의 본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이라고 합니다. 이 이름은 네로 황제를 내쫓고 즉위한 플라비안 황조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이 건축물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주로 검투사의 결투나 모의 해전, 동물 사냥, 신화 재연 등의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으며 5~8만명 정도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중세에 제국이 몰락하면서 콜로세움도 채석장, 요새, 교회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콜로세움은 강도, 약탈, 채석 등 때문에 많은 부분이 손상을 입었지만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꼽히고 있죠.

 

오늘은 트레비 분수에 이어서 로마에서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인 콜로세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길이 189m, 너비 156m, 면적 24,000㎡으로 그 높이가 오늘날의 17~18층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그 앞에서 보면 콜로세움의 크기에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진에 모두 담으려면 한참을 뒤로가서 찍어야 했습니다.

 

콜로세움 경기장 내부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하는데요. 매월 첫째주 일요일은 무료라고 하며, 콜로세움+팔라티노 언덕+포로로마노 이렇게 세 곳을 갈 수 있는 통합권이 16유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제가 갔을 때는 내부에 들어가지 않고 외부에서만 사진을 찍었는데요. 매우 아쉬움이 남습니다. 수세기 전에 만든 건축물을 눈으로만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서 그 웅장함을 느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 로마인들의 뛰어난 건축물 콜로세움

 

콜로세움 - 여행 당시 찍었던 사진! 사람들이 매우 많다.

 

 

콜로세움의 역사

고대 로마 제국

현재 콜로세움이 세워져 있던 곳은 고대 로마 시대의 주거 지역이었는데, 서기 64년 로마의 대화재가 일어나고 그곳에 있던 건물들이 화재로 다 타버립니다. 네로 황제는 그 자리에 자신의 화려한 궁전과 정원, 호수, 자신을 본 딴 거대한 청동 거상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에 반발하여 반발이 일어났고, 그때 네로 황제는 살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황제의 자리에 즉위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이 궁전을 헐어버리고 공공을 위한 건축물을 짓기로 하는데, 그것이 바로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입니다. 

콜로세움은 서기 70~72년 경 건설이 시작되어 80년 완공이 되었다고 하며, 이 때 열린 콜로세움의 개막식에서 9,000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죽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경기장은 6세기까지 계속 사용되었으며 동물 사냥은 523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세

유럽 전역에 기독교가 들어서며 6세기 후반엔 콜로세움의 한 귀퉁이에 예배당이 세워졌습니다. 경기장은 묘지로 바뀌었고, 좌석이 있던 곳에는 상점과 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록에따르면 12세기 후반까지 임대되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1200년대에 어떤 한 가문이 자신의 성으로 개조하려고 했던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곳이 묘지가 되고, 상점가와 주택들이 들어선 것인지 상상이 가질 않네요. 제국이 몰락하고 천 여년 동안 방치되어 왔다는 얘기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349년에는 로마에 대지진이 일어나 콜로세움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경기장의 남쪽 벽이 무너져 내린 것인데요. 이 벽의 잔해들은 코롤세움의 재건에 상용되지 않고, 다른 건물들에 사용되기 위해 옮겨졌다고 하며 그 외에도 콜로세움의 여러구데에 피해를 주었는데, 현재에도 그 피해를 벽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콜로세움은 성당이나 귀족들이 저택을 짓기 위한 건축자재와 채석장이 되어 파헤쳐 지기도 했는데, 1748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더이상 이곳을 채석장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원형의 3분의 1만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하는데, 이렇게 무분별하게 유적을 훼손했던 탓이 큰 것이었네요. 콜로세움의 안에서 상점도 열고 주택도 들어섰다고 했는데, 그런 부분이 안타깝지만은 2,000여년이 된 건물이 지어질 때의 모습과 같은 온전한 모습이 아니지만 이렇게 굳건하게 세월을 견뎠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807년, 1827년에는 외벽에 쐐기를 박아 보강했으며, 19~20세기에는 계속해서 내부를 수리했다고 합니다. 1993~2000년까지 7년동안 400억 이탈리아 리라를 들여 보수 작업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콜로세움 내부 모습

 

콜로세움의 구조

내, 외부

타원형의 건물인 콜로세움의 외부는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으로 각층마다 양식을 달리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이 콜로세움을 짓기 위해서는 이전에 지었던 건축기술과는 다른 요소가 필요했는데, 그것은 바로 아치와 벽돌, 콘크리트였습니다.

아치를 만들때는 우선 목재틀로 지지대를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쌓은 뒤 꼭대기에 쐐기 돌을 놓습니다. 쐐기 돌이 돌의 무게를 양쪽으로 분산시킴으로써 아치 위에 더 많은 돌을 쌓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콜로세움에는 각 층에 80개의 아치로 240개의 아치가 있으며 내부에도 수 없이 많은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 아치로 인하여 콜로세움은 가벼우면서도 거대하고 강한 건축물로 만들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강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백만개 이상 사용된 테라코타 벽돌과 콘크리트 였다고 합니다. 석회와 물, 화산재에 모래와 자갈을 섞어 콘크리트로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이 덕분에 거대하고 튼튼한 콜로세움을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콜로세움의 내부에는 200개의 가죽 차양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는 경기장의 3분의 2를 덮을 수 있었고, 통풍이 잘 되도록 살짝 안으로 기울어진 형태로 설치되어 관중석에 태양빛과 비를 치단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80개의 출입구가 있었다고 하는데,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유사시 관중들을 빠르게 대피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 중 4개의 문은 황제와 귀족을 위한 것이었는데, 타일과 황금으로 꾸며져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콜로세움이 많이 무너져서 32개의 문만이 남아 있다고 하네요.

 

당시에도 관중들이 입장할때 예약한 관중석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입장권에 번호를 적어서 주었다고 합니다.

 

내부의 좌석들은 당시 계급에 따라 구분이 되었는데, 계급이 높은 사람일수록 경기장과 가까운 곳 하부의 좌석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앙경기장

경기장 자체의 크기는 길이 83m, 너비 48m라고 하며 그 아래 지하에서는 노예와 검투사들이 경기 직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엇으며, 동물들은 근처 마구간에서 터널을 통하여 곧장 경기장의 지하로 들어올 수 있었으며, 이곳에 갇혀 대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콜로세움 야경 모습

 

 

당시 콜로세움에서는 검투사 경기 뿐만 아니라 코뿔소, 타조, 호랑이, 사자 등의 동물 사냥, 검투사들과 노예나 전쟁 포로들의 결투, 사형 선고를 받은 이들은 맹수에게 산채로 찢기는 형벌 등이 행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콜로세움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직접 눈으로 봤을때에도 콜로세움의 크기에 압도 되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3분의 1정도 남아있는 것이었네요. 콜로세움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외부의 모습이나 내부는 어땠을지 정말 궁금해 집니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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