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아이 석상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모아이 석상은 칠레의 이스터 섬에 있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 섬이 관광이 가능한 곳인줄 몰랐는데, 칠레를 방문하면 꼭 가야할 여행지로 꼽힌다고 합니다.
이스터 섬은 칠레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5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고 하는데요. 이스터 섬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값도 비싸고, 이 섬의 물가도 비싼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터 섬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이 필요한데, 통합 입장권은 80달러라고 합니다.
이스터 섬은 작은 편이지만 걸어다니기엔 무리가 있어 택시나 차량을 렌트하여 다니는게 좋다고 하더라구요. 차량 운전이 어렵다면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이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하여 여행자 분들이 이스타 섬에 방문한 사진을 보고 있는데요. 하늘도 엄청 예쁘고, 섬이다 보니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딱 SNS 사진 각 나오더라구요!
저는 도시 여행보다는 이런 자연을 만끽하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다녀온 여행자 분들이 추천해주신 스팟을 좀 적어 보자면,
-라노라라쿠 : 이곳이 바로 서태지의 '모아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장소라고 합니다.
-아후 통가리키 : 선셋과 선라이즈 포인트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오롱고 : 화산 분화구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스터 섬의 여행지 정보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이스터 섬의 역사와 모아이 석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터 섬의 발견
1722년 4월 14일. 네덜란드 제독 야곱 로헤벤이 이스터 섬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터'라는 섬의 이름은 이 섬을 발견한 날이 부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야곱 로헤벤이 이스터 섬을 발견했을때 이 황무지에는 사람 얼굴 모양의 석상이 887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석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아이 석상'인데요. 모아이 석상의 사진만을 보면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데, 옆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보면 그 크기가 어마어마 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모아이 석상의 높이는 자그마치 3~10미터, 무게는 3~10톤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모아이 석상은 1250~1500년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 바다 쪽을 등지고 섬의 중앙을 향해 한 방향만으로 줄지어 있습니다. 이 석상은 좁은 이마, 높고 큰 코, 기다란 귀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상반신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원래는 눈 부분에 산호와 붉은 화산암이 박혀 있고 머리 부분에는 재질이 다른 돌이 얹혀져 있었다고 합니다. 섬의 연안을 중심으로 하여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섬을 보호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씁니다.
또한 모아이 석상은 라노라라쿠 화산에서 채취한 돌을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화산 주변에 제작중이던 모아이 석상과 도구들이 남아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만들어 졌고, 재료가 무엇인지 역시 자세히 알려진바 없습니다.
1722년 이스타 섬이 발견된 당시에 이 섬에는 3,000여명 정도의 원시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들은 오두막이나 동굴에 살면서 계속해서 전쟁을 했고, 식량난이 발생하여 심지어는 식인 풍습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20세기에 이곳을 연구하던 인류학자들이 그런 그들을 보고 모아이 석상을 만드는 것과 같은 사회적으로 진보되고 기술적으로도 복잡한 석상을 만드는 일을 그들이 해냈을리 없을거라고 판단했고, 그 때문에 이 섬과 모아이 석상은 불가사의한 존재가 되버립니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던 옛날에 크기도 크고, 수백개나 되는 석상이 누가, 어떻게, 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어지니 추측뿐만 아니라 '외계인의 소행이다', '지금은 태평양으로 가라앉아 버린 사라진 문명의 흔적이다'와 같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죠.
이스타 섬에 정착한 폴리네시아인
5세기. 이스터 섬에 정착한 정착민들은 광활한 태평양을 탐험하던 폴리네시아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처음 이스터 섬에 도착하기 400년전에 화산활동이 멈춘 상태였지만 온도와 습도가 높았고, 토양은 배수가 나빳으며 하천도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원까지 거의 없는거나 다름 없었다고 합니다. 섬인데도 불구하고 이 근처에서는 물고기 마저 많이 않았다고 하니 당시에는 사람이 살기 척박한 곳이었던것 같습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이전에 살던 곳에서도 아주 제한된 식량에 의존해 살았는데, 이스터 섬에 이주해 와서도 그들의 식량창고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이 섬의 기후가 빵나무와 코코넛 같은 열대작물에는 맞지 않아 제대로 크지 않았고, 타로와 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이스터 섬에 오면서 닭과 쥐만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들은 극도로 단조로운 식단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를 보았을 때 1722년 당시 유럽인들이 마주했었을 그 원시부족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당시 그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이어갔는데 그 이유가 아마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싸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사람까지 먹어야할 정도의 식량난이라면 그들의 어려움이 긴 얘기를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이런 척박한 땅임에도 인구가 점차 증가하였고, 이들은 가게와 씨족을 이루고 각각 고유의 종교를 갖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제례의식을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모아이 석상
이들의 중요한 기념비는 거대한 석조대인데, 이것은 이스터 섬 뿐만 아니라 다른 폴리네시아 지방에서도 발견되는 '아후' 또는 '모아이'와 비스한 것으로 묘지, 조상 숭배, 죽은 족장을 추도하기 위한 기념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석상들은 라노라라쿠의 채석장으로부터 흑요석으로 된 도구만을 사용하여 조각한 것이며 남자의 머리와 몸통을 정형화 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기념비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입니다. 상당수의 모아이 석상들은 하지, 동지, 추분, 춘분에 맞춰져 고도로 복잡한 천문학적인 배열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보았을때 섬 주민의 지적 수준을 어느정도 알 수 있습니다.
전성기를 맞이한 섬은 1550년에 주민들은 7천여명에 육박해갔고, 씨족의 집단도 늘어나며 서로간의 경쟁이 점점 심화되기 시작합니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수백개의 모아이 석상과 600여개의 거대한 석상들이 만들어 졌는데, 당시 주민들은 그들이 만들었던 이 크고 거대한 석상이 그들 사회 전체를 파멸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몰락해 가는 이스터 섬
이스터 섬을 연구한 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이스터 섬에 사람이 살 때는 넓은 살림과 울창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인구가 점점 늘며 농경지를 개간하기 위해 그 외의 집과 집기, 카누 등을 만들기 위함과 이 거대한 석상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통나무가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나무를 마구 베어냈습니다. 이에 따라 1600년 경에는 섬의 나무가 모두 사라지게 되었고, 그렇게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무분별하게 진행된 산림 벌채는 1500년경부터 이스터 섬의 주민들을 동굴에서 살게끔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의 부족으로 인하여 더이상 목재를 구하기 어려워져 집을 짓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죠.
이스터 섬은 척박한 땅이었고, 섬 주변에 물고기도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것이라도 잡아 식량을 비축해 뒀어야 했는데, 그물을 만들때 필요한 나무조차도 구할 수 없는 지경이라 고기잡이도 어려워졌습니다. 게다가 경작지에 뿌릴 동물 비료도 부족하여 토양도 황폐해져갔습니다.
토양이 황폐해지니 자연스레 작물 수확량이 날로 감소해갔고, 그에따라 인구도 감소하게 됩니다. 게다가 유일한 단백질 원으로 남아 있던 닭들의 수도 점차 줄어들자 식인을 하는 풍습까지 생겨버리게 된 것이죠. 섬을 탈출하고 싶어도 카누를 만들 목재를 구할 수 없었으니 그들은 하루하루가 악몽 같았을 겁니다.
생존에 대한 문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니 석상 제작은 엄두도 못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회의 신앙 체계와 사회 조직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그에 대해 점점 갈등이 심해져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변해버렸던 겁니다.
그들이 전쟁을 하는 주 목적이 식량이나 목재의 강탈인줄 알았는데, 상대편 부족의 모아이나 아후를 파괴하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이런 수많은 전쟁 때문에 현재 몇 개만이 묘지로 남았을 뿐 대부분 파괴 되거나 망가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이스터 섬에 있는 모아이 석상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이스터 섬은 하루면 섬 전체를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섬이라고 합니다. 자원에 한계가 있는 이렇게 작은 섬에서 환경과 균형을 이루는 사회 시스템을 고안해 내지 못했던게 이스터 섬의 몰락을 부추긴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출처 :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도개유적-모아이', 네이버 지식백과'역사로 보는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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